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레퀴엠(Requiem)》을 중심으로, 이 작품이 지닌 역사적·영적·음악적 가치를 폭넓게 살펴본 뒤, 장재형(장다윗)목사(이하 ‘장목사’)의 설교와 가르침이 이 곡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 마지막으로 현대 신앙인이 얻을 수 있는 실제적 적용점과 교훈을 제시합니다. 원문은 크게 네 부분(Ⅰ~Ⅳ)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모차르트의 《레퀴엠》 – 탄생 배경, 교회음악 전통, 그리고 역사적·음악적 가치
‘레퀴엠(Requiem)’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requies”(휴식, 안식)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사용되는 전례 용어로서, 죽은 이를 위한 미사(미사 프로 데푼크티스, Missa pro defunctis)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이 죽은 후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과정을 기리며 함께 기도하는 의식이 점차 음악과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레퀴엠’은 단순히 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식이 아니라, 죽음을 둘러싼 비통함, 애도, 영원한 안식을 향한 소망이 긴밀하게 얽힌 독특한 음악 장르가 되었습니다.
레퀴엠에는 대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Kyrie eleison)” 혹은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라는 기도문이 꼭 들어갑니다. 이는 가사의 핵심 주제가 ‘죽은 이를 위한 기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그레고리오 성가 형식의 단선율 레퀴엠이 발전하였고, 이후 여러 작곡가들이 화려한 다성음악이나 오케스트라 편성을 도입하면서 극적인 표현력을 더해 왔습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K.626》 역시 그 흐름의 한복판에 서 있는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레퀴엠》 작곡의 역사적 맥락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출신으로, 고전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천재 작곡가입니다. 이미 어릴 적부터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 여행을 했을 만큼, 당대에 있어서 모차르트의 재능은 범인(凡人)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오페라, 교향곡, 실내악,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미사곡을 비롯한 다채로운 교회음악까지 방대한 레퍼토리를 남겼지요.
1) 작곡 당시의 건강 악화와 재정적 어려움
**《레퀴엠》**이 작곡된 1791년은 모차르트 생애의 마지막 해입니다. 이 시기 모차르트는 육체적으로도 지쳐 있었고, 재정적으로도 궁핍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작곡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으며, ‘신비로운 의뢰인’으로부터 레퀴엠을 작곡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하게 됩니다. 당시 그에게 의뢰를 준 사람은 바로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Franz von Walsegg)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직접 의뢰하지 않고 중개인을 내세운 탓에 모차르트 입장에서는 의뢰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비밀스러운’ 의뢰인이 보낸 임무를 완수하려 애쓰던 중, 모차르트는 병세가 점점 악화되었고 결국 이 곡을 완성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로 인해 **《레퀴엠》**은 미완성 상태가 되었고, 이후 모차르트의 제자였던 쥐스마이어(Franz Xaver Süssmayr)가 남은 악장을 완성했다고 전해집니다.
2) 극적인 미완성의 배경과 작품에 대한 신비감
미완성으로 남은 《레퀴엠》은, 모차르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비극적·예술적 요소와 맞물려 더 큰 신비로움을 부여받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모차르트가 자신이 죽음을 직감한 채 레퀴엠을 썼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결국 자신을 위한 장례미사를 작곡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구전과 해석이 쌓이면서 **《레퀴엠》**은 음악사에서 단순히 한 편의 걸작을 넘어, ‘죽음을 마주한 인간의 실존’이라는 테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3. 교회음악으로서의 의의: 전례문과 영성
레퀴엠은 전통적으로 가톨릭 장례 미사에서 사용되는 정규 전례문이 있으며, 음악적 틀 역시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Requiem aeternam”으로 시작하여 “Kyrie eleison”이나 “Dies Irae”, “Sanctus”, “Agnus Dei” 등을 거쳐 “Lux Aeterna”로 마무리되는 흐름은,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의 두려움에서부터 하나님의 자비와 영원한 빛을 구하는 소망에 이르는 여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1) 장례미사와 추도식에서의 역할
장례미사나 추도식에서 레퀴엠이 울려 퍼질 때, 곡을 듣는 이들은 음악을 통해 비통함을 토해내면서도 동시에 신앙 안에서의 위로와 안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슬픔을 달래 준다”는 심리적 효과를 넘어, “죽음이라는 통과의례를 하나님 앞에서 함께 고백하고 나아간다”는 영적 공동체적 체험을 의미합니다.
2) 고전주의 전성기의 거장, 모차르트가 남긴 교회음악의 정수
모차르트는 오페라와 같은 세속 음악 분야에서 걸출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종교음악—특히 미사(Missa)나 레퀴엠—에 있어서도 당대 최고 수준의 작곡 기량을 발휘했습니다. 《레퀴엠 K.626》은 고전주의 시대에 완성된 교회음악 중 하나이자, 바로크 이후 이어져 온 웅장한 대규모 종교음악 전통을 매듭지으면서도, 낭만주의 시기의 서막을 알리는 듯한 극적 감성을 지닌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가톨릭 ‘장례 미사’ 텍스트 그대로 사용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전례문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음악이 전례 자체에 봉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작곡가의 창작적 요소와 함께 오랜 교회 전통이 어우러져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점에서 **《레퀴엠》**은 ‘신앙 고백으로서의 음악’이라는 측면을 잘 드러내며, 바로 그 점이 훗날 여러 교파와 시대를 넘어 사람들이 이 곡에 큰 감동을 느끼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4. 레퀴엠의 음악적 특징과 죽음·애도의 정서
기본적으로 레퀴엠은 ‘죽음’을 그려내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이 꼭 비장함과 공포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초반부의 엄숙하고 낮은 음역대에서부터 점차 커지는 악기 편성, 합창의 다이내믹한 전개 속에는, ‘두려움’과 ‘애도’, 그리고 ‘희망’이 교차하는 정서적 변화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Dies Irae(진노의 날)”**에서 보여지는 폭발적 코러스는, 인간이 직면해야 하는 심판의 날에 대한 떨림을 생생히 구현합니다.
한편 후반부 **“Lux Aeterna(영원한 빛)”**로 갈수록, 죽음을 넘어서는 빛과 평화,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구원에 대한 갈망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구도의 흐름은 기독교 신학의 중요한 주제인 ‘종말과 구원’을 음악적으로 체험하게 합니다. 즉,레퀴엠이라는 형식을 통해 듣는 이들은 죽음과 심판, 구원에 대한 엄숙한 신학적 메시지를 입체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신학적 함의
1. 레퀴엠에 담긴 신학적 요소: 죽음·심판·구원의 삼중주
레퀴엠의 전례문은 크게 세 가지 신학적 축을 담고 있습니다. 바로 죽음(mors), 심판(iudicium), 그리고 구원(salus)입니다. 인간이 누구나 맞이해야 할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최후 심판, 마지막으로 그 심판 앞에서 바라보는 구원의 소망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 죽음(mors):
레퀴엠의 시작인 “Requiem aeternam”는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는 기원으로, 인간이 더 이상 시간의 제약 속에 있지 않고 영원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전제합니다. 모차르트는 이 대목을 잔잔하면서도 신비로운 화성으로 펼쳐 내어, 죽음을 ‘두려움’으로만 규정하기보다, ‘겸허히 마주해야 할 신비이자 문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심판(iudicium):
레퀴엠의 가장 극적 부분인 “Dies Irae”나 “Tuba Mirum”에서는 마지막 날의 심판 광경이 음악적으로 폭발합니다. 강력한 합창과 관악기의 사용은 천사들의 나팔 소리를 연상시키고, ‘최후의 날’이라는 테마가 주는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이는 신앙적 전통에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얼마나 중차대한 일로 보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 구원(salus):
그러나 레퀴엠은 결코 심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Kyrie eleison(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나 후반부 “Lux Aeterna(영원한 빛)”를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의 초대가 분명히 노래됩니다. 죽음과 심판이‘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을 향한 ‘전환점’으로 이해되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지요.
2. 장재형 목사의 설교와 《레퀴엠》의 교차점
장재형목사는 여러 설교와 강의에서 종말론과 구원론을 집중적으로 다뤄 왔습니다. 이는 “인간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의 은혜”를 강조함으로써 회개와 소망을 함께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 “Dies Irae”와 장목사의 경고 메시지
“Dies Irae(진노의 날)” 대목에서 울려 퍼지는 음향적 폭발과 긴장감은, 장목사가 종종 설교에서 강조하는 “깨어 있으라”(마태복음 24:42)의 경종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죄에 대한 대가가 반드시 치러지며, 최후의 심판이 다가온다는 성경적 가르침은, 음악적 드라마를 통해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장목사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가 결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절박한 진리”임을 역설해 왔지요. - “Lux Aeterna”와 장목사의 구원·위로의 메시지
레퀴엠이 엄중한 심판을 노래하는 것에만 머물렀다면, 분명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두려움만으로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을 장식하는 “Lux Aeterna(영원한 빛)”는 역설적이게도 깊은 평안과 안식을 청하고 있습니다. 장목사도 설교에서 “하나님이 죄인을 부르시는 이유는 단지 정죄가 아니라 회복과 구원 때문”이라는 점을 반복해 왔습니다.
결국 레퀴엠을 통해 우리는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의 자비가 있다”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소망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장목사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위로와 회복”은, “Lux Aeterna”의 멜로디가 선사하는 영적 평안과 맞물려 강력한 위로의 순간을 연출합니다. - 예배와 음악: 장목사의 ‘예배신학’과 레퀴엠
장목사는 예배신학을 강조하며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동시에 말씀과 복음을 통해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자리”라고 가르칩니다. 이때 음악은 곧 예배의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비록 레퀴엠이 가톨릭 전례 형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안에 담긴 죽음·심판·구원이라는 기독교적 주제는 교파를 초월하여 공감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장목사는 “신앙의 본질에 부합하는 예술이라면, 교회가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역시 “수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찬탄하는 이유가, 곧 그 안에 담긴 강력한 복음적 메시지와 예술적 탁월성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3. 현대 신앙인을 위한 적용과 교훈
레퀴엠이라는 작품은 18세기 고전주의 시대의 산물임에도, 21세기 오늘을 사는 신앙인에게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 죽음 앞에서의 겸손과 회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진중하게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이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자주 잊어버리는 주제이기도 하지요. 장목사는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인 동시에, 신앙인은 이를 늘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음악의 장중함과 비장함을 통해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까?”를 성찰하는 과정에서, 자발적인 회개와 겸손이 일어납니다. 이는 단순한 감상 차원을 넘어, 구체적 행동과 삶의 태도 변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 영원한 위로와 소망
레퀴엠이 전체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죽음이지만, 놀랍게도 그 결론은 ‘절망’이나 ‘암흑’이 아니라 ‘자비와 빛’에 방점이 찍힙니다. “Kyrie eleison(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에서 “Lux Aeterna(영원한 빛)”로 이어지는 흐름은, 죄와 죽음이 결코 결말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장목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얻는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설교의 중심에 놓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위로와 소망이 기다린다는 확신은, 레퀴엠을 듣는 이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신앙을 견고히 세우는 힘이 됩니다. - 예배와 예술의 만남: 공동체 예전 속에서의 레퀴엠 활용
장목사는 교인들에게 예배 때 고전음악, 미술, 문학 등 다양한 예술을 적극 활용해 보길 권장합니다. 이는 예술 작품이 곧 인간의 내면과 영혼 깊숙이 호소하기 쉬운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엄숙하고도 장엄한 분위기가 있어, 장례예배나 추도예배 혹은 성찬예식 등 특별한 예전에서‘묵상의 배경음악’으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장목사는 “단순히 ‘음악적 감동’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며, “가사에 담긴 신앙 고백을 곱씹으며, 실제로 그것이 내 믿음과 기도가 되게 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 공동체의 연합과 성도의 돌봄
레퀴엠이 전통적으로 장례미사에서 연주되어 온 사실을 떠올려 보면, 이 작품은 공동체가 함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큰 의의를 갖습니다. 장목사는 “교회는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끝까지 동행하는 영적 가족”이라고 강조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종종 외면되거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건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레퀴엠이 들려오는 예배나 추도식 속에서, 교회 공동체는 유족과 함께 울고, 상심한 마음을 함께 위로하며, 동시에 영원한 소망을 함께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너희는 서로 짐을 지라”(갈라디아서 6:2)는 말씀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결론: “죽음을 넘어 영원으로” — 《레퀴엠》과 장목사의 가르침이 전하는 메시지
- 《레퀴엠》: 죽음, 심판, 구원을 함께 노래하는 걸작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작곡가 생애 말기에 탄생한 걸작이자, 가톨릭 전례음악의 정수를 담아낸 상징적인 곡입니다. 감상자에게 ‘죽음’이라는 중대한 주제 앞에 서게 하면서도, 그 자리가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임을 음악적으로 보여 줍니다. - 장재형 목사: 종말론적 경각심과 복음의 은혜
장목사는 설교를 통해 “인간의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죄인이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핵심을 결코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결국 **《레퀴엠》**의 구조 또한 ‘엄중한 심판’을 노래하다가 ‘자비와 빛’을 향해 나아가는 흐름을 보이므로, 이는 장목사의 설교 주제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습니다. - 현대 신앙인에게 주는 적용점
- 죽음의 현실을 기억하며, 매 순간 깨어 있기
- 회개와 겸손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신앙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 삼기
- 영원한 위로와 소망을 붙잡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위로와 돌봄을 나누기
- 예배와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깊은 영적 체험을 추구하기
- 음악과 신앙, 그리고 인간 실존이 교차하는 지점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끝이지만, 기독교 신앙 안에서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진지하게 감상하는 이들에게는, 한편의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자신의 죽음과 영원’에 대한 깊은 성찰과 묵상이 일어납니다.
장목사의 가르침을 곁들여 이 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음악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영적 통찰과 예배적 감동으로 이어지는 통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넘어 ‘영원으로’ 나아가는 길에, 우리를 이끄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 계심을 고백하게 되지요.
(부록) 추가적인 신학적·음악적 고찰: 레퀴엠의 역사적 발전과 수용
1) 중세부터 이어진 죽음 묵상의 전통
중세 교회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주제를 통해, 인생이 유한함을 늘 상기시키고, 그 유한함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독려했습니다. 레퀴엠은 이런 중세적 전통의 대표적인 음악적 구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형식의 단선율로 불리던 초기 레퀴엠은, 말 그대로 고인의 안식과 심판에 대한 경외심을 묵상하는 데 사용되었지요.
2)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다성음악 전통
르네상스 시대에는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나 빅토리아(Tomás Luis de Victoria) 등 작곡가들이 다성음악(polyphony)을 레퀴엠에 적극 도입했습니다. 이는 장례미사의 심오함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후 바로크 시대에는 장대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동원한 레퀴엠이 등장하며, 한층 극적인 음악 양식을 띠게 됩니다.
3) 고전주의 시대와 모차르트의 유산
고전주의 시대에는 주로 균형 잡힌 형식미가 중시되었으나,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그 안에서 인간적 감정과 극적 요소를 배합해 낸 수작입니다. “Dies Irae”의 폭발적 합창, “Tuba Mirum”의 트롬본 선율(또는 특유의 저음 금관) 등은 곡 전체에 묵직한 영향을 끼쳐, 죽음의 무게감을 생생히 전달합니다.
4) 낭만주의 이후의 레퀴엠
모차르트 이후 베토벤은 레퀴엠을 공식적으로 작곡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교향곡과 미사곡을 통해 심오한 종교적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낭만주의 시대로 넘어가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의 《레퀴엠》, 브람스(Johannes Brahms)의 《독일 레퀴엠》, 베르디(Giuseppe Verdi)의 《레퀴엠》 등 각 작곡가의 개성 넘치는 레퀴엠이 탄생합니다. 그중 베르디의 《레퀴엠》은 오페라적 기법이 반영된 ‘극적인 레퀴엠’으로 유명하고,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독일어 성서 텍스트를 사용한 점에서 독자적 위치를 지닙니다. 그러나 그 모든 레퀴엠 가운데서도,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지닌 ‘고전주의의 세련미’와‘인간적 절절함’의 조화는 여전히 특별한 감동을 줍니다.
5) 현대 교회음악과 레퀴엠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전통적인 라틴어 레퀴엠을 전례에서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추모 예배나 특별한 예식에서 발췌된 악장이나 편곡 버전을 가끔 연주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레퀴엠이 교파와 전통의 경계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인간 실존에 대한 깊은 통찰’과 ‘죽음 너머의 구원 희망’이 어느 시대, 어느 사람에게나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정리의 마무리: 예배·음악·신앙의 하모니
이상으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가진 역사적·영적·음악적 가치를 살펴보고, 그 속에 담긴 신학적 메시지를 장재형 목사의 설교와 연결해 보았습니다. 모차르트가 마지막 생애에 남긴 이 작품에는, 죽음의 공포, 인간의 죄성과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운 구원이라는 복합적 주제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장목사가 여러 설교에서 강조하는 종말론과 구원론, 그리고 예배신학과 결합될 때, **《레퀴엠》**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현대 신앙인에게도 생생한 영적 울림을 전해 줍니다.
- 죽음과 심판을 잊지 말라:
레퀴엠은 우리에게 인생의 유한함을 상기시키고, “Dies Irae”의 장엄한 선율을 통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심판의 현실을 알려 줍니다. - 그러나 구원의 빛을 놓치지 말라:
음악의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Lux Aeterna”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이어진다는 희망을 선포합니다. - 예배와 예술이 만나는 지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 신앙의 본질,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근거한다면, 레퀴엠이라는 전례음악 또한 현대 교회가 깊이 묵상하고 적용할 만한 소중한 유산이 됩니다. - 공동체의 돌봄:
죽음과 애도의 순간에, 교회 공동체가 함께 레퀴엠을 듣고 묵상한다면, 음악을 매개로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동시에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소망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레퀴엠은 ‘죽음을 노래하는 곡’이지만, 실제로는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는 신앙 고백입니다. 장목사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우리 모두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겠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안에서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는 복음의 결론이 레퀴엠 전곡에 흐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그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은 곧 ‘음악적 감동’을 넘어‘영적 체험’으로 거듭납니다.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면,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통해 죽음과 구원의 문제를 진지하게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목사의 설교와 가르침을 함께 접하면서, “음악과 신앙, 그리고 인간 실존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더욱 깊은 깨달음과 회개의 열매, 나아가 영원한 소망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영원한 빛(Lux Aeterna)이 기다리는 소망의 길이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겸손하면서도 담대해질 것이다.”
이 한 줄로 압축되는 메시지가,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장목사의 가르침이 현대 우리에게 전해 주는 가장 핵심적인 교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