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종의 종소리에서 피어나는 일상의 제단: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가 전하는 로마서의 예배론

1859년,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세상을 놀라게 할 걸작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캔버스 위에는 권위적인 대성당의 웅장함도, 화려한 금빛으로 장식된 제단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거칠고 투박한 감자밭 한가운데서, 멀리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에 맞춰 일손을 멈추고 경건하게 고개를 숙인 두 농부의 실루엣을 담아냈습니다.

**’만종(The Angelus)’**이라 불리는 이 명화 속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농부들의 발치에 놓인 흙 묻은 쇠스랑과 감자 바구니입니다. 이 보잘것없는 노동의 도구들은 화려한 성물(聖物)보다 더 거룩한 빛을 발하며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밀레는 이 그림을 통해 종교적 경건이란 결코 성전의 휘장 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님을 웅변합니다. 오히려 땀 흘리는 노동의 현장, 일상의 흙먼지가 날리는 삶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진실한 숨결을 통해 비로소 예배가 완성된다는 묵직한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짐승의 피로 드리는 구약의 제사 시대를 종결하고, 살아 숨 쉬는 우리 자신의 존재 자체를 제단 위에 올리라고 명한 사도 바울의 혁명적 선언과 깊은 궤를 같이합니다.


🩸 핏빛 제사를 넘어 생명의 호흡으로: 은혜가 이끄는 전인적 전환

구약 시대 예루살렘 성전은 동물의 피가 마를 날 없는 처절하고 비극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 무고한 어린양과 염소들이 기드론 골짜기를 붉게 물들이며 죽어갔습니다. “피 흘림 없이는 사함이 없다”는 엄중한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사는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당신의 몸을 찢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는 이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종결시켰습니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진 사건은, 이제 더 이상 죽은 짐승의 피가 필요하지 않은 ‘은혜의 직통로’가 열렸음을 우주적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는 로마서 강해를 통해 바로 이 지점, 즉 구원론적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예리하게 통찰합니다. 그는 설교를 통해 이제 신자의 제물은 짐승의 목숨이 아니라, 구원의 감격이 살아있는 ‘전인적인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지정의(知情意)와 매일의 호흡이 담긴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박제된 종교 의식을 넘어 생명력이 넘치는 일상의 예배로 나아가는 위대한 부름입니다.


⛪ 성전 문밖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진정한 영적 예배’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의 본질에 대해 파격적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배는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 같은 특정한 물리적 장소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영과 진리”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주일 중 단 하루, 구별된 성소 안에서 정해진 순서에 따라 드리는 형식적인 행위가 예배의 전부가 아님을 시사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깊은 신학적 혜안을 바탕으로, 예배가 제도적 공간에 갇히는 순간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영적 화석’이 될 위험이 있음을 경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의 진짜 무대는 어디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치열하고 때로는 남루하기까지 한 현실의 삶입니다. 히브리서 13장의 증언처럼,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외된 이웃의 짐을 함께 나누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는 모든 섬김의 행위가 하나님이 가장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사입니다. 주일에는 거룩한 옷을 입고 경건한 척하다가, 평일의 삶터에서는 세속의 욕망과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산다면 그것은 바울이 말한 영적 예배와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 발 딛고 서 있는 모든 땅이 제단이 되어야 하며, 우리의 온몸이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십자가: 고난과 헌신의 치열한 제단

구약의 대속죄일 제물은 그 피만 성소로 옮겨졌을 뿐, 육체는 진영 밖에서 남김없이 불태워졌습니다. 인류의 죄와 수치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안락한 예루살렘 성문 안이 아니라, 고난과 치욕의 상징인 ‘영문 밖’ 갈보리 언덕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산 제물의 가장 극적인 모델로 주님이 걸어가신 그 영문 밖으로 우리 역시 기꺼이 짐을 지고 나아가는 삶을 제시합니다.

이는 종교적 울타리 안에서의 안온함을 포기하고, 타인의 상처와 세상의 고통이 소용돌이치는 현장으로 뛰어드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고백했듯,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값비싼 제물이 아니라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입니다. 거저 받은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이웃의 아픔을 나의 것으로 여기며 애통해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우리의 평범한 삶은 비로소 하늘에 닿는 거룩한 제물이 됩니다.


🔄 세대를 거스르는 마음의 갱신: 세상을 변화시키는 내면의 혁명

세상의 거센 풍조 속에서 어떻게 이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그 해답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현대 사회는 물질만능주의와 무한 경쟁, 쾌락주의라는 독소를 끊임없이 주입합니다. 우리가 성경 묵상을 통해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조차 세속적인 탐욕의 문화에 은연중에 순응하고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지점에서 외부적인 제도의 개혁보다 훨씬 시급한 것이 내면의 본질적인 변화, 즉 **’심령의 갱신’**임을 역설합니다. 거짓된 세상의 가치를 분별하고 저항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앞에서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님께 내면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어드려야 합니다. 매일의 치열한 영적 전투 속에서 마음을 새롭게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네 생물이 온몸의 눈을 들어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하듯, 진정한 예배자는 세상의 화려한 유혹 앞에서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매일이 세상 풍조를 거스르는 거룩한 저항이 되고,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는 따뜻한 손길이 될 때, 세상은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복음의 능력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밀레의 농부들처럼 겸손히 고개를 숙여봅시다. 삶이 예배가 되고 예배가 삶이 되는 그 영광스러운 부름 앞에,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제단 위에 정성껏 올려놓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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